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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풍족하게 해줄 독서

4차 중동전쟁 그리고 1차 오일쇼크 - 2

by 또링또링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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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출근으로 인해 이전 글의 다음 시리즈 연재를 이제서야 하게 되었네요.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시리즈 : 미리 잠깐이나마 보고 이 글을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2021.08.31 - [내 삶을 풍족하게 해줄 독서] - 4차 중동전쟁 그리고 1차 오일쇼크 - 1

 

4차 중동전쟁 그리고 1차 오일쇼크 - 1

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하였다시피 1970년 대에 들어서며 영국&미국과 중동 산유국가 간의 석유 질서 변동이 시작되며, 중동 국가들이 석유의 주도권을 갖기 시작합니

ddol2freedom.tistory.com

 

 

손을 내미는 이스라엘, 잡기를 망설이는 미국

그 아무도 예측 못했던 4차 중동전쟁의 선제 기습 공격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 미국의 CIA 조차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3차 중동전쟁과는 정반대의 양상이 전개되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에 군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이집트군이 이전에 뺏겻던 시나이반도를 탈환하고 이스라엘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Golda Meir)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에 사우디가 이집트의 제안에 망설였던 것처럼 이번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지원 요청에 망설이기 시작합니다.

 

미국에게 있어 중동은 최대 사업장이기도 하면서도 각 중동국가들은 그들의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동국가들의 눈의 가시인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수에즈 운하 사건 때처럼 아랍국가에서 '중재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미국이 이스라엘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를 실추 시킬 수도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대한 중동에서 요충지 역할을 하는만큼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패망할 수도 있는 이스라엘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골다 메이어 (좌), 리처드 닉슨 (우)

 

 

어떠한 구실이라도 찾아야 했던 미국은 소련이 이집트에 대규모 군수 지원 실시한 것을 명분 삼아 이스라엘에 대규모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의 대외 정책 전략가로 활동하던 헨리 키신저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반발이 심했던 중동 국가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반아랍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 간'의 문제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키신저의 발언과 함께 미국은 니켈 그라스(Nickel Grass)라는 작전명으로 대형 수송기와 탱크, 장갑차,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전격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물자 지원 속에 이스라엘은 서서히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 시작하며 반격에 나섭니다.

 

 

사우디, 석유 무기화 동참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속에 눈치 보던 사우디도 결국 석유 무기화에 동참합니다. 다만 당시 석유 무기화의 방법에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이견이 많았습니다. 이라크의 경우 전면적인 석유 생산 중단과 석유 자산 국유화를 주장한 반면, 사우디는 전쟁이 발발한 10월부터 매월 5 퍼센트 씩 감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사우디의 주장대로 월 5 퍼센트 감산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라크는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일쇼크 시기에 감산조치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혼자 배를 불리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 커질라, 키신저, 전쟁에 마침표를 찍다

미군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는 이집트 군을 밀어내고, 북쪽 지방에서는 시리아 군을 제압하며 전세를 역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세가 역전되자 미국은 소련이 4차 중동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글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전쟁이 장기화 됨에 따라 천문학적인 피해와 희생이 따를 수 있었기에, 키신저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이 전쟁을 종료하기로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미국의 압박 속에 더 이상의 반격을 포기하고 종전에 합의하게 됩니다. 이렇게 20일 간의 전쟁은 1973년 10월 25일에 종료 됩니다.

 

 

시작과 끝을 맺는 키신저

 

 

4차 중동전쟁과 1차 오일쇼크 그 결과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은 약 1만 명이 다치거나 죽은 것으로, 이집트와 시리아는 약 3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1~3차 중동전쟁에서 밀리기만 하였던 중동 국가가 예상치 못한 반격을 보여주며 아랍권이 무시 못할 상대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매월 5퍼센트의 감산이었던 석유 무기화 조치는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배럴당 3달러 수준이었던 유가는 한달 만에 약 12달러 까지 치솟았으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며 유럽과 일본 등이 아랍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데도 성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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