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내 삶을 풍족하게 해줄 독서

영국과 미국, 중동에서 석유의 시대를 열다

by 또링또링 2021. 6. 26.
반응형

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연일 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최근 밀리의 서재에서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최지웅 저자의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라는 이 책은 석유를 단순히 연료로 보는게 아닌 역사적으로 전 세계의 욕망이 집중되는 근원적인 요소로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차 세계대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석유가 현대사에 영향력을 미쳤던 역사 속 사건들을 설명하고 해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일련의 사건들을 엮어주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알게된 흥미로운 사건에 대해 간단히 포스팅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중동이란 지역은 저에게 단순히 석유, 이슬람 종교 같은 두루뭉실한 존재로만 여겨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곳의 역사와 배경 등에 대해 자세히 알게되어 상당히 유익했던 책인것 같습니다.

 

윈스턴 처칠, 석유의 시대를 열다

산업혁명이 도래된 이후 주요 에너지원은 석탄 이었습니다. 다만 이 석탄은 부피 문제와 더불어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해군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chill)은 연료원인 석탄을 석유로 바꾼다면 해군의 함정 속도와 작전 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당시 독일과의 해군력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해군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윈스턴 처칠, "진정한 석유왕"은 나라규

 

하지만 영국은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국가였기 때문에 석유를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영국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을 선택하게 됩니다.

 

현재 아라비아반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여기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영토였습니다. 20세기 초반 영국군은 아랍인들의 편에 서서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는데 도움을 줍니다. 오스만 제국을 몰아낸 이후 아랍의 내부 세력 간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며, 사우드(Saud) 가문이 메카의 하심 가문을 물리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이 사우드 가문의 아라비아 지배를 허용하며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가 건국하게 됩니다.

 

 

또한 영국은 아라비아반도와 이웃한 이란의 옛 영토(페르시아)에서도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국인 윌리엄 녹스 다아시(William Knox D'Arcy)는 페르시아에서 7년 간의 오랜 시간 동안 유전 탐사를 진행하였고 마침내 1908년 페르시아 남부의 마스제드솔레이만에서 거대한 유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으로 BP(British Petroleum)의 전신인 앵글로-페르시안(Anglo-Persian Oil Company)라는 석유회사가 설립됩니다.

 

또한 영국은 1917년 벨푸어 선언으로 이스라엘 건국도 주도합니다. 또한 중동 지역에 국경을 긋고, 개별 국가들의 성립에도 역할을 하는 등 영국은 중동 지역에 수 많은 개입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중동 지역에 개입을 통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로 중동 지역의 석유 질서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처칠이 연료를 석유로 바꾸며, 영국의 중동 개입은 본격화 되었으며 이 덕분에 영국은 1,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됩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영국은 그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중동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아채고 영국을 견제하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등장하게 됩니다.

 

미국, 뒤늦게 중동의 중요성을 알고 접근하기 시작하다

미국은 194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대 산유국으로 석유를 자급할 수 있었으며 자국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941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석유와 중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석유가 전쟁 승패의 결정적인 요소이며, 모든 전선에 석유를 공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해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당시 최고의 지질학자인 에버렛 드골리에(Everette Lee DeGolyer)를 중동으로 보내 석유 매장량을 조사하게 합니다. 그는 조사 후 이렇게 말합니다.

 

"중동 석유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포상'이 될 것이다"

 

드골리에 : "중동 짱짱맨"

 

미국이 중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영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영국은 중동을 노리는 소련의 위협을 방어하고, 중동 유전 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부족하였기에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중동으로 들어와 영국의 지분을 상당 부분을 뺏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런 오묘한? 상황 속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Roosevelt)는 영국에 딜을 제시합니다. 그는 주미 영국 대시 핼리팩스(Halifax)를 불른 후 종이에 직접 손으로 중동 지도를 그리며 아래와 같이 제안합니다.

 

"페르시아(이란) 석유는 영국이 갖고, 이라크와 쿠웨이트 석유는 공유하며, 사우디 석유는 미국이 갖는다"

 

 

이러한 루즈벨트의 제안은 재협상과 내부 진통을 겪지만 결국 1944년 영미석유협약(Anglo-American Petroleum Agreement)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이 협약과 함께 사우디에는 미국 회사가 자리를 잡았고, 이란에는 영국 회사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미국은 사우디에 당시 미국 석유 기업 소칼(Socal)과 텍사코(Texaco)가 합작하여 아람코(Aramco)라는 석유 회사를 설립합니다. Arabian-American Oil Company를 의미하는 아람코는 현재 사우디의 국영 회사이지만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회사였습니다. 이란에서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BP의 전신은 앵글로-페르시안 석유 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Made in US, UK 였군여...

 

이후 영국과 미국은 두 나라에서 각 4명씩 총 8명으로 구성된 국제석유위원회(International Petroleum Commission)를 구성합니다. 이 기구를 통해 두 나라는 권장 생산량, 시장 조절 방안 등을 협의하게 되며, 이러한 생산량 조절 관련 협약은 이후 석유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영국과 미국의 대타협은 중동에서 두 나라가 배타적 석유 이권을 유지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 체제하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엑손모빌, BP, 쉘, 셰브런 등의 석유기업들이 성장하며 엄청난 부를 창출하게 됩니다. 영국과 미국의 밀월 같은 관계는 수십년 간 지속되며 중동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