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내 삶을 풍족하게 해줄 독서

이탈리아의 마테이(Eni),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에 도전하다

by 또링또링 2021. 7. 14.
반응형

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시리즈가 재밌다는? 몇몇 이웃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오늘 또 한번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세븐 시스터즈 (Seven Sisters), 당신은 누구입니까?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국에서는 '칠공주'가 더 유명한? 단어 같지만, 1950년 당시 세븐 시스터즈란 7개의 주요 석유 회사를 지칭하는 말로 석유업계에서 쓰였던 용어입니다. 이 당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주요 석유회사들은 이전 글에서 보셨다시피 영국과 미국이었습니다. 1950~60년대 세븐 시스터즈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1. 스탠더드 오일 뉴저지 [엑손(Exxon)으로 사명 변경 후 모빌(Mobil)과 합병하여 현재의 엑손모빌이 되었습니다.]

2. 스탠더드 오일 뉴욕 [모빌(Mobil)로 사명 변경 후 엑손(Exxon)과 합병하였습니다.]

3. 쉘

4. BP

5. 스탠더드 오일 캘리포니아 [후에 셰브런으로 사명 변경]

6. 텍사코 [후에 셰브런에 합병됩니다.]

7. 걸프오일 [후에 셰브런에 합병됩니다.]

* 5개는 미국 기업이었으며, 2개는 영국 기업(쉘, BP)이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중동 진출을 노리며 유전을 선점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2차 승전국이 된 이 두 나라는 은밀한 밀월 관계를 통해 독점적인 사업권을 나눠 가집니다. 이러한 독점적 사업권을 통해 미국과 영국은 안정적인 석유 수급은 물론 경제적 이익을 누리며 중동 정세를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상남자 마테이, 세븐 시스터즈에 도전

하지만 이러한 영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석유 질서에 반기를 들며 야심하게 도전을 하는 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마테이(Enrico Mattei)입니다. 거대 세력에 맞서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그의 도전정신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프란체스코 로지(Francesco Rosi)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엔리코 마테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마테이 사건(IL CASO MATTEI)

 

당시 '세븐 시스터즈'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마테이였는데요, 그는 미국과 영국의 석유 회사가 배타적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븐 시스터즈라는 말에는 칠공주파처럼 패거리를 만들어 석유 이권을 독점하는 행태를 비난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괜히 칠공주파 하면 떠오르는 영화 써니...

 

 

마테이는 이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1953년 Eni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중동 국가에서 석유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석유 수익 분배 원칙을 파격적으로 제시합니다. 당시 영미계 석유 회사들은 중동 국가들과 50대 50으로 수익을 반분하고 있었는데, 1957년 마테이는 이란에 75(이란):25(Eni) 파격적인 수익 배분 조건을 제시하고 개발권을 따내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마테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1962년 지중해의 파이프라인과 소련의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소련의 원유를 대량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오려는 플랜을 짰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시장을 독점하시다시피 했던 영미계 석유 회사가 소련산 석유에 의해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 산유국에 진출하여 Eni의 사업을 더 키워나가려 하였습니다. 

 

 

Oil supply contract signing, Moscow, Russia, 1960

 

 

갑자기 사망 마테이, 무슨일?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던 마테이의 거친 질주는 1962년 갑자기 멈춰 버립니다. 소련과 지중해 사이에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전용기가 추락하는 의문의 사고로 마테이는 사망하게 됩니다. 다만 이 사고의 어떤 확실한 물증이 아직까지 없어 누구도 사고의 원인을 확실하게 이야기는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문을 사고를 두고 일부는 이 사고의 원인이 기상 조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는 Eni의 부사장이었던 레오나르도 마우게리(Leonardo Maugeri)와 미국인 윌리엄 엥달(William Engdahl)은 미국의 CIA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 주재 CIA 책임자가 사고 직후 로마를 바로 떠난 점, 마테이의 전용기가 미군의 접근이 쉬운 NATO 공항에서 이륙한 점, 그리고 사고 직후의 CIA 보고서 등이 공개되지 않은 점 등을 제시하며 CIA의 개입설을 제시하였습니다. 

 

 

 

 

마테이 사망 사건에 대한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치 않지만, 그의 저돌적인 태도와 자세 그리고 Eni의 성장은 당시 미-영의 독점 석유 시장을 위협할 수 있을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였습니다. 특히 이탈리아는 지중해라는 특징으로 인해 유럽 내에서 세븐 시스터즈보다 원유 유통에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마테이가 사망 한 후에도 Eni는 대형 석유 회사로 성장하였으며, Eni가 위치한 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서 피아자 엔리코 마테이(Piazza Enrico Mattei)로 바뀌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들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