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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석유 질서 지각 변동의 시작

by 또링또링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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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이전 글들에서 보셨다시피 1960년대 중동국가들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석유 질서 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1. 이란, 모사데크를 주축으로 앵글로-이란 석유 회사 국유화 시도 but fail

2. 이탈리아의 마테이는 세븐 시스터즈에 맞서다 의문의 사망

3. OPEC의 설립 하지만 미미한 영향력

4. 1,2,3 차 중동전쟁 속 중동의 약해진 영향력

 

 

생산물(석유), 세계를 지배하는 원천

위처럼 사업, 혁명 심지어 전쟁을 통해서도 어찌하지 못했던 영국 미국 주도의 석유 질서는 1970년을 맞이하며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잉여 생산물'에서 시작 됩니다.

 

그렇다면 생산물이란 무엇이라 볼 수 있을까요? 생산물이란 일종의 '부(富)' 그 자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생산물을 기반으로 경제가 작동을 하고 권력이 존재할 수 있던거지요. 그러기에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는 이 생산물과 생산 수단의 통제 & 방식 차이를 두고 나타난 대립 관계로 볼 수도 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생산물을 지배하고 확보하는 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었으며, 이를 통해 세계에 하나의 질서를 형성하며 국제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생산물이 바로 '석유'였습니다.

 

 

 

 

1960년, 잉여 생산물의 소멸과 이로 인한 지각 변동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자국 석유 산업을 보호하고자 석유 수입 물량을 제한하였으며, 자국의 석유 생산 시설을 100% 가동하지 않은채 여유 부분을 남겨두어 비상시를 대비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여분의 '잉여 생산물'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던 미국은 중동이 석유 무기화를 하더라도 무력화 시킬 카드를 가지고 있던 셈이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에즈 운하 폐쇄 속에서도 미국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막아줄 수 있었으며,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석유 금수 조치를 취했음에도 잉여 석유를 통해 이들의 위협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며 미국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게 되며 자국 내의 원유 생산도 100% 가동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잉여 공급 물량이 소멸하며 아랍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러한 상황에 맞춰 아랍 국가들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카드를 서서히 내밀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아랍 국가들은 항상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석유 이익 분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 미국과 영국의 석유회사 주도하에 수익을 반분하는 원칙에 반기를 들며 목소리를 내는 자가 등장한 것이죠. 바로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Gaddafi)입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Gaddafi)

 

 

카다피는 리비아에 있던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탈(Occidental)에 수익 협상을 통보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회사를 국유화하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결국 리비아 정부의 수익은 55%로 늘어 났으며, 이를 시작으로 이란 55%, 베네수엘라 60%로 수익 분배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1년 테헤란과 트리폴리에서 석유 분배에 대한 '반분 원칙'이 깨지는 중대한 협정이 체결됩니다. 이 협정을 통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반분 원칙은 깨지고, 산유국이 55~60%의 이익을 가져가는 형태로 전환되었으며, 매장된 석유의 소유권도 공유하는 형태로 변화하였습니다.

 

이처럼 중동 국가로의 석유 주도권이 넘어가는 변화는 미국의 잉여 공급량 소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국제 사회에서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막대한 비용 지출과 고전을 하며,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나 과도한 정치 개입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바꿨습니다. 영국 또한 수에즈 운하 사태를 포함해 19세기에 찬란했던 영광의 시기를 잃어버리며 이전처럼 힘을 쓰지 못했고, 경제 불황까지 덮치며 당시에 '영국병 British Disease'라는 말까지 만들어 졌습니다.

 

1970년대를 기반으로 아랍 국가들이 석유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며, 그들은 지난 굴욕과 서러움의 복수를 위한 칼을 갈기 시작합니다. -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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