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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의 인문학 서재_경제적 관점의 역사_대항해시대(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by 또링또링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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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 입니다. 저번 글에 이어 경제적 관점으로 보는 역사 글을 포스팅 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글은 르네상스 이후 대항해시대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쉽게나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어가면서 동시에 국가별로 정리해 이해를 쉽게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 대항해시대의 출발

르네상스 시대에 인도나 동남아 등지에서 생산된 후추와 같은 향신료들은 아랍권을 거쳐 이탈리아 도시 국가에세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향신료들이 너무나 비쌌다는 거였으며, 거기다 오스만 제국이 터키지역을 점령하며 교역료를 통제하게 되면서부터 향신료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유럽인들은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직접 동남아시아로 가서 향신료를 직거래하여 큰 이윤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당시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이탈리아와는 달리 더 비싼 가격에 향신료를 구매해야 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인들의 향신료에 대한 욕망은 더 컸고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이 대항해 시대의 시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 : "널 갖고 싶다 향신료"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1492~1506),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가고자 했던 바스코 다 가마(1469~1524),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항로를 개척하며 가고자 한 마젤란(1480~1521) 이들이 모두 가고자 한 곳은 인도, 동남아시아 같은 향신료 산지였습니다. 

향신료를 찾아...

향신료를 위해 시작된 대항해 시대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와 동남아 등 해외 곳곳에 식민지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향신료 외에도 금, 은, 설탕, 노예 등을 수입하거나 수탈하며 역사상 가장 부강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앞으로 발견되는 식민지를 나눠 갖는다는 '토르데시아스 조약'을 맺으며 보다 많은 식민지 확보를 통해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두 나라의 패권은 1600년대 들어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출범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교역이나 식민지를 통해 아무리 많은 자원이 국가에 유입이 되더라도 그것들이 서민들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부는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들은 다른 산업에 투자되지 못하고, 기득권과 금융업자들 손에서만 움직이며 다른 나라로 다시 흘러가며 결국 국가는 쇠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알함브라 칙령'이라는 유대인 추방령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며 2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스페인 도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과 무역을 융성시키던 이들이 떠나게 됨에 따라 스페인의 민간경제가 황폐화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네덜란드,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의 탄생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며 유럽 교역의 무대는 지중해로부터 대서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스페인의 속국이면서 쩌리?였던 네덜란드는 대서양이나 북해, 발트해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하며 유럽 각지의 소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알함브라 칙령'으로 인해 유대인들 중 상당수가 네덜란드에 운집하며, 네덜란드는 빠른 시간에 유럽 최고의 무역과 금융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도 대항해시대의 선박단을 꾸리기 위해 대규모의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게 됩니다. 그 결과 1,000명이 넘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거대 자금을 모집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회사를 1602년에 설립하게 됩니다. 정부는 이 동인도회사에 무역독점권 뿐만 아니라 교전이나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최초의 주식회사, VOC.. 

이러한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가치가 급등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소유권을 보유하거나 매각하려는 욕구가 높아져 갔고,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1609년 암스테르담에 동인도회사가 발행한 주권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하였습니다. 

네덜란드 증권거래소 : 주할아버지, 주할머니들의 시초가 된 곳...

동인도회사 설립과 함께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이동하게 됩니다. 주식회사 시스템으로 큰 자금을 모집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향신료 시장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며 향신료 가격 하락과 시장의 쇠퇴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영국과의 여러 차례 전쟁을 통해 전력을 점차 상실해 나갔습니다. 결국 1798년 제4차 영란 전쟁에서 패한 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98년 해산되며 국유화가 됩니다.

작은 나라에서 주식회사와 주식시장의 시대를 열고 한때 세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의미는 경제적인 관점으로 볼 때 상당히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 브루주아의 도약 [민주주의 태동 + 산업자본주의 발현]

16세기 영국은 백년전쟁(1337~1453)과 장미전쟁(1455~1485)를 겪으며 비실비실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헨리 8세(1491~1547)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거치며 조금씩 국력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경제사관 입장에서 볼때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을 영국의 성장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교회의 폐습 타파와 재산을 왕실에 귀속시키며 피폐해진 왕실 재정을 보완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교회의 척결은 오랫동안 유지된 기득권 세력을 약화시키며 당시 태동하고 있던 신흥 브르주아 세력에게 큰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인클로져 현상(지주가 경제성 높은 양털을 생산하기 위해 소작농을 쫓아내고 토지에서 양을 사육하는 현상)이 성행하였는데, 헨리 8세가 구교회로부터 몰수한 수많은 토지를 부르지아들에게 싸게 매각하며 인클로져 현상은 보다 가속화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교회 척결 및 인클로져 현상을 통한 수공업 발전과 부르주아 세력의 확산은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헨리 8세는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세력의 영향이 큰 의회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입헌군주제도의 씨앗을 심은 역할도 하였습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도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해상 무역을 장려하였습니다. 영국도 네덜란드처럼 동인도회사가 설립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네덜란드에 비해 규모가 작은편이라 처음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동남아시아는 네덜란드가, 인도는 포르투갈이 이미 향신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틈새시장? 전략으로 차, 커피, 면화, 설탕 등 다품종 무역을 통해 무역을 진행하게 되었고 추후 향신료 가격 하락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서거 이후 청교도혁명으로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령이 됩니다. 그는 1651년 항해조례(유럽 외에서 생산되는 물자를 영국에서 수입할 때 영국 선박만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 등을 포함)를 발표하여 경쟁국인 네덜란드와 영란전쟁을 하였고, 동인도회사를 주식회사로 변경하며 부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크롬웰은 항해조례를 통해 동인도회사는 크게 육성하게 되고 부르주아를 위한 정책을 도입하는 등 영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며 보스턴 차 사건(1773), 아편전쟁(1840~1842) 등을 통해 세계 역사의 큰 부분을 250년간 장식하였습니다.

올리버 크롬웰 찡

영국의 부르주아 세력은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무역업과 제조업 발달과 함께 그 영향력을 확대해 갔습니다. 이와 함께 1668년 명예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 방식의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됩니다. 이처럼 기득권의 약화와 부르주아 세력의 성장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8세기 하반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과 경제학의 태동이라는 경제사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합니다. 1776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출현과 함께 산업혁명은 사회,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주었으며, 같은 해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처음으로 발간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아담 스미스 외에도 데이비드 리카도, 맬서스 등 영국에서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방적기, 증기선 등 다양한 기계의 발명과 함께 영국은 엄청난 경제적 도약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산업혁명이 가져온 어두운 면도 많았습니다. 자본가들의 부는 끊임없이 축적되는 반면 노동자, 농민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1810년대 영국 중북부 공업 지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이 일어났으며,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기근으로 100만 명이 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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