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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혁명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을까?

by 또링또링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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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최근 연일 치솟고 있는 유가 속에서 자연스레 에너지 관련 책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에너지 산업에서 혁명이라고도 여겨지는 셰일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셰일혁명

최초의 셰일 혁명 시작 장소

SH 그리핀(Griffin) 4번 천연가스정

 

바로 셰일 혁명이 처음 시작된 장소입니다. 텍사스의 댈러스 주를 벗어나 북쪽으로 40마일 가량 달려 1,395명의 작은 마을 폰더(Ponder)를 지나 40마일을 더 가서 인구 407명의 디시(Dish)라는 마을에 위치한 이 곳. 울타리 너머에 '1998년 시추 시작'이란 표지판이 걸려 있는 가스정은 오늘 날의 에너지 패권 지도를 바꿔 놓은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셰일 혁명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셰일혁명의 시작은 조지 P.미첼로부터

미국의 조지 P. 미첼(George P. Mitchell)이란 사업가는 단단하게 굳어있는 퇴적암 지층인 셰일 암석층(Shale Rock)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어 상업적 이득을 볼 수 있을거라 확신이 있었고, 결국 그의 오랜 신념은 SH 그리핀 4번 가스정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 밑에서 미첼은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면서도 대학교에 입학하여 당시에는 새로운 학문이었던 석유공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천연가스 개발 회사(미첼 에너지, Mitchell Energy)를 설립하였습니다. 

 

평소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던 미첼에게 석탄보다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천연가스는 매력적인 사업 대상이었으며, 그는 천연가스 개발 사업과는 별개로 휴스턴 북쪽에 44평방 마일의 부지를 마련해 우드랜즈(The woodlands)라는 계획 도시까지 조성하였습니다.

 

이렇게 계획도시까지 만들만큼 환경 문제가 관심이 많은 미첼이었지만 본업은 천연가스 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기 시작합니다. 그의 회사 미첼 에너지는 시카고가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10%를 책임지기로 계약했지만 보유하고 있던 가스정들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1981년, 그는 우연히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 있는 지하 깊은 곳의 암석층에서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추출해 낼 수 있다는 논문을 읽게 됩니다. 셰일 암석층 안에 석유나 천연가스를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만큼 뽑아내긴 어려울거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내용의 이 논문을 읽고, 그는 어쩌면 이것이 회사를 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거라 확신하였습니다. 

 

조지 P. 미첼(George P. Mitchell), 셰일 혁명을 일으키다
토마스 기차 닮으셨....

 

 

 

 

프래킹(Fracking)으로 셰일 암석층을 뚫다

미첼은 단단하게 굳은 퇴적암 지층 안에 작은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천연가스가 가스정으로 흘러 나오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수압 파쇄법(Hydraulic Fracturing)이란 기술을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수압 파쇄법이란 물과 모래 및 여러 화학물질 등이 뒤섞인 용액을 강한 압력으로 지층에 쏘아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천연가스가 빠져나오게 하는 기술입니다. 훗날 프래킹(Fracking)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죠.

 

하지만 미첼의 기대와는 달리 시간은 흘러가고 비용만 늘어나며 실질적인 성과는 딱히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1990년대 재무 위기가 닥친 미첼은 직원을 내보내고, 우드랜즈 매각까지 진행까지 해야 했습니다. 1998년까지 미첼 에너지가 셰일 가스에 투자한 돈은 무려 2억 5,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직원들조차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프래킹 기술 원리

 

이런 희망 없는 상황 속에서도 관리직이었던 닉 스테인스버거(Nick Steinsberger)는 미첼과 함께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1998년 마지막 시도를 위한 승인을 겨우 받아낸 그는 '특수 용액 파쇄법(Slick Water Fracking)'이란 기법을 적용하여 셰일 암석층을 뚫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며 미첼 에너지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몇 십 년간 프래킹 기술에 투자를 했던지라 회사 금고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미첼은 그 당시 전립선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그의 아내도 알츠하이머 병 증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미첼 에너지를 눈여겨 보던 이가 등장합니다.

 

닉 스테인스버거 최초의 셰일가스 상용화를 이루다
닉 스테인스버거 "존버는 승리한다"

 

 

 

 

데본 에너지(Devon Energy), 미첼 에너지를 눈여겨 보다

데본 에너지의 최고경영자 래리 니컬스(Larry Nichols)는 미첼 에너지의 생산량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을 보며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니컬스는 미첼 측이 프래킹 기술을 성공한 것을 알아차리고 2002년에 35억 달러에 미첼 에너지를 인수하였습니다.

 

데본 에너지와 미첼 에너지의 결합은 셰일가스 개발에 경제성을 더하였습니다. 셰일가스 개발이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평 굴착 기술이 필요했는데 데본 에너지가 바로 이 분야의 선두주자 였기 때문입니다. 수평 굴착 기술은 측정 기술, 컴퓨터 제어 기술, 진동 해석 기술 등이 결합해 이루어지는 난이도 높은 기술입니다.

 

데본 에너지는 특수 용액을 사용하는 프래킹 기술과 수평 굴착 기술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셰일 암석에 있는 천연가스를 뽑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셰일가스의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데본 에너지 CEO, 래리 니컬스
래리 니컬스 "인생은 타이밍"

 

 

셰일가스 발견 후 변화

셰일가스 생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셰일 폭풍(Shale Gale)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공급량이 부족해지기는커녕 넘쳐나기에 이르며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갑작스런 공급량 증가와 저렴한 가격이 합쳐지며 미국 에너지 산업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전력 생산에서 나타났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천연가스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가스 사용을 제한하고 석탄을 발전용 연료로 적극 권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셰일가스 시대가 도래하며 미국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던 석탄의 비중은 2020년에 19%까지 떨어진데 반해, 천연가스의 비중은 40%까지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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