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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라는 기축통화의 탄생 배경과 그 이야기

by 또링또링 202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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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똘이 아부지입니다.

 

최근 테이퍼링 이슈 속 연일 오르는 환율 속에 해외 주식 투자자들도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슈의 중심에는 달러가 있는데, 오늘은 기축통화로 군림하고 있는 달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축통화(Key Currency)란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의 되는 통화를 지칭합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달러가 한 나라의 화폐가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레튼우즈 협정 (Bretton Woods Agreement) : 금본위제도의 시작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과정을 이해하려면 브레튼우즈 협정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기축통화의 지위는 영국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은 전쟁 물자 구입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지출되며 자국 내에 있던 금까지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 이 금들은 모두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권국으로 강림한 미국은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지닌 나라가 되었고, 1944년 7월 미국의 브레턴우즈라는 스키 휴양지에서 44개국 동맹국들을 초청한 후에 세계 금융 질서를 세우기 위한 회의를 열게 됩니다. 이 협정에서 미국의 달러를 금본위제도에 입각한 기축통화로 사용할 것을 합의하게 됩니다. 

 

금본위제도(Gold standard)란 어떤 화폐의 단위 가치와 금 일정량의 가치가 등과관계를 유지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즉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해, 달러는 금 1oz 당 35달러라는 가치를 지니게 되며, 미국 달러만이 금과 일정한 비율로 교환될 수 있다는 지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기축통화에 대한 권리를 얻음과 동시에 전 세계 무역이 안전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호하고 관리하는 세계의 경찰국가로서의 일 또한 하게 됩니다. 미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무역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을 다른 나라에 개방하여 경제난에 빠진 나라들을 지원하기 약속하였습니다.

 

 

브레튼우즈 협정, 달러를 금본위제 입각한 기축통화로

 

 

닉슨 쇼크 : 금과 달러의 교환 중지 선언

미국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30년간 잘 유지가 되었지만 문제점들이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달러를 국가 간 무역에서 사용하려면 막대한 양의 달러를 세계에 공급해야 하는데, 만약 달러를 많이 발행하게 되면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고, 그렇다고 달러의 발행을 줄이면 공급 부족 현상이 직면하는 딜레마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지출 증가와 더불어 고유가, 무역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인해 미국은 달러의 공급을 늘려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달러는 금본위제도에 기반하여 '금 1oz는 35달러'라는 고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금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달러 공급량이 늘어나니 달러의 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달러 하락의 염려를 먼저 눈치 깐?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은 대규모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가버렸으며, 실제 금보다 더 많이 발행된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신뢰를 잃을 위기까지 처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은 금본위제도를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의 말과 함께 브레턴우즈 체제는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닉슨 쇼크라 불리는 이 선언과 함께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인하여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되었고, 원유 가격 또한 급격하게 상승하며 물가 상승은 가속화가 되었습니다. 한편 닉슨 쇼크 이후 달러는 더 이상 금과 교환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가치가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기축통화의 지위를 지켜내고자 하였습니다. 군사력 지원을 통해 사우디 왕가를 지켜주는 대신 원유를 살 때는 미국 달러로만 결제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를 구축한 것입니다. 당시 석유는 산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에 그 수요와 가치는 유지될 수 있었고, 이러한 체제를 통해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다시 지킬 수 있었습니다.

 

 

플라자 합의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브레튼우즈 체제, 닉슨 쇼크, 오일 머니 등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온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기축통화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손 봐야 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환율'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통화량이 증가하더라도 가치 유지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높은 달러 가치에 비해 다른 나라의 화폐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입량은 증가하고 수출량이 감소하며, 미국은 대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반면 이 당시 일본은 엔저 상태를 이용해 미국에 엄청난 수출을 하며 무역흑자를 일으키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이런 일본의 질주를 보며 미국은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영국으로 구성된 G5 재무장관들과의 회의를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의 평가 절하를 단행해 버립니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화폐 가치를 올림으로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야기한 '플라자 합의'입니다.

 

이와 함께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며 경제 회복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의 엔화는 가치 상승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고, 엔저 때 형성되었던 버블이 터지며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의 벌어질 일을 모른채 일본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달러가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고 그 자리를 지켜왔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영원한 1인자는 없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도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영향과 역할은 다른 화폐보다 강하고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그 자리를 넘보며 바짝 추격을 해 오고는 있지만, 코로나로 국제적 신뢰를 잃어버리며 달러를 추격하려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가상자산의 출현도 미래의 화폐의 질서를 바꿔 놓을 수도 있기에 미래에는 우리의 화폐가 어떨지 그리고 그 방향은 어떨지 자주 자주 들여다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에게 있어 미국주식 투자는 투자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기에서도 달러의 지위는 항상 견고해 왔기에 안전 수단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화보다 국제적으로 쓰임이 많다는 것은 그 가치와 효용성 측면에서도 유용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달러와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는 필수라고 봅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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